1913송정역시장의 오래된 상점은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젊은 감각으로 새 단장해 여행자의 발길을 끌고 있다. 

한때는 잘나갔지만, 이제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에 새 숨결이 일고 있다. 어제의 역사 속에서 발견한 가치에 새로운 변화를 더해 함께 사는 세상으로 재탄생한 공간. 상생의 마을은 매일 조금씩 진화하는 중이다.

버려진 공간 가능성에 눈뜨다.

문래동, 성수동 1913 송정역 시장

문래동 좁은 골목길에서 옛 철공소 거리의 분위기와 동시에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색적이면서 조화로운 풍경이다. 오래된 도시와 골목이 재생과 복원을 통해 전통의 멋을 살리고 시민에게 편의를 주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서울 문래동은 1930년대 방적 공장 지대로 조성된 후 번성과 퇴보의 사이클을 지나 철공소 골목으로 굳은 기계 공업 단지다. 홍대 앞 예술가들이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빈 사무실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그들은 문래동의 잉여 공간을 주목했다. 작업실을 통해 자신을 알리려는 작가의 공간이 돋보이기 시작하면서 문래동 골목에는 감성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외지인에 의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감지한 서울시에서 ‘문래예술공장’이라는 작가 지원 공간을 만든 것을 계기로 문래동은 철공소와 아틀리에가 공존하는 골목으로 변신했다. 크고 작은 갈등도 분명 존재하지만 당분간 문래동의 진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을 통해 동네의 빛깔이 달라지고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래동이 예술가가 먼저 들어가고 서울시에서 나중에 거든 케이스라면, 성수동은 처음부터 성동구가 나서서 재생을 모색한 지역이다. 성수동은 1990년대에 제화 기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오랜 세월 구두와 가죽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공업 단지로서의 규모와 기능이 축소된 성수동 일대에는 새로운 숨결이 필요했고 성동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맞물려 벽돌 창고, 빈 공장,문 닫은 구두 가게에 갤러리와 공방, 카페가 들어서면서 성수동은 젊은이들이 찾아드는 동네가 됐다. 성수동 공업 단지의 상징 대림창고는 공단의 흔적과 예술이 공존하는 ‘성수동대림창고갤러리’로 재탄생했다. 최근 성동구, 대기업, 비영리 단체가 함께 문을 연 ‘언더스탠드에비뉴’도 성수동의 재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116개 컨테이너에 청소년 일터학교 유스스탠드, 가치소비를 제안하는 스토리숍 소셜스탠드 등 시민의 문화 공유를 지원하는 플랫폼과 공방, 매장, 카페 등 상업 시설이 함께 자리해 성수동의 정체성과 트렌드를 접목한 공간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주광역시 송정역 앞 ‘1913송정역시장’은 문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100여 년 전통의 시장을 되살린 사례다. 더는 손님이 찾지 않는 시장이지만 그 오랜 역사에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보았고 광주시는 재건축이 아닌 재생의 개념으로 시장을 정돈했다. 시장의 분위기를 쇄신할 젊은 상인도 영입했다. 그 결과 1913송정역시장을 찾는 방문객은 하루 평균 200명에서 4000명 이상으로 늘고, 점포 공실률은 34.5%에서 3.6%로 감소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상인이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것을 존중하고 새 시대를 인정하는 도시 재생 문화. 문래동과 성수동, 1913송정역시장을 넘어 더 많은 곳으로 퍼져야 할 오늘의 가치다.

유령 도시에서 상생의 중심지로 

영국 게이츠헤드·토트네스

작품이 세워질 당시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지만 어느덧 게이츠헤드의 랜드마크가 된 북쪽의 천사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듯 양팔을 벌린 조형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게이츠헤드(Gateshead)에 도착한 것이다. 런던에서 기차로 세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게이츠헤드 여행은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와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게이츠헤드는 선박, 화학,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관련 산업이 몰락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공장은 속속 문을 닫고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유령 도시가 된 지역의 화려한 부활은 ‘문화’와 함께 시작됐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고심한 시청 아트 팀은 도시의 굴곡진 역사 위에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미술을 기반으로 도시의 모습을 탈바꿈한 것이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발틱 현대미술관(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의 과거는 오래된 밀가루 공장이다. 1950년대부터 30년 이상 밀가루를 생산했던 공장이 망하면서 쓰임새를 잃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시민들은 공장 건물을 부수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없을까 고심했다. 그 결과 2002년 공장의 외관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바꾸지 않은 채 내부 개조를 통해 미술관을 개관했다.

발틱 현대미술관은 런던의 테이트모던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로 게이츠헤드의 이미지를 문화의 도시로 바꿨다. 

게이츠헤드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조형물인 밀레니엄 브리지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0년 게이츠헤드 시는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리 디자인을 공모했고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공모 아이디어를 반영해 시각적 아름다움과 보행자의 편의를 중시한 새로운 디자인의 다리를 개통했는데, 밀레니엄 브리지는 게이트헤드의 상징이자 지역민의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이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게이츠헤드 시가 가장 중점에 둔 것은 지역민의 행복이었다. 화려한 몇 가지 건축물을 세우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지역민의 의견과 편의를 가장 우선에 둔 것이다. 행정부서와 지역민,관광객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든 게이츠헤드의 노력에서 상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게이츠헤드의 상징 밀레니엄 브리지는 사람이 통행하는 인도교로 만들어 시민과 함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영국 남서부 끝단에 위치한 토트네스(Totnes)는 지역민과 경제, 환경의 상생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과거 산업혁명의 핵심 도시이자 목축업으로 이름을 날린 토트네스는 1989년 광우병으로 인해 경제가 몰락하면서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지역 경제가 더는 외부 경제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게 하고자 지역사회의 유통 구조 혁명을 이룬 것이다. 토트네스에서 소비되는 식자재는 도시 주변 20km 이내의 농장에서 생산한 것으로 유통은 소규모 유기농 식료품점이 맡아 한다. 대형마트나 카페 체인점은 하나도 없다. 

토트네스 자급자족 경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토트네스 파운드를 들 수 있는데 영국 파운드와 동일한 단위로 표기하는 이 화폐는 2007년 토트네스 변혁마을 단체가 발행한 것으로 지역 내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역 화폐가 꼭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컸지만, 토트네스 파운드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받으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 토트네스는 2030년까지 지역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에너지 자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붕 위에 태양광판을 설치하는 등 생활의 작은 부분부터 개선하는 이 운동 모델은 미국과 호주 등 전 세계 40여 개 국가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역민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토트네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